[이슈모음] 우리에게 중국은 누구인가? 전 통일부장관 이 종 석 - 20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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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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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국은 누구인가?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끌고 갔던 한국 외교는 호언장담하던 ‘북한이 공격했다’는 문구조차 명기하지 못하는 혹독한 실패를 맛보았다. 국내에서조차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부실한 조사 결과가 빚은 참사였음에도 일부에서는 마치 중국의 정의롭지 못한 비토행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천안함 문제가 유엔에서 강대국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외교적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강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미-중 갈등 구도가 천안함 문제를 왜곡시킨 것이 아니라,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견해 차이가 미-중 갈등을 야기했다. 중국이 안보리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안보리 의장성명 후에도 “누구 편이냐?”를 물으며 천안함 문제를 정치화시켜 중국과의 갈등구도를 격화시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마치 냉전시대의 진영 간 대결을 연상시킬 만큼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중국을 배타시하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가뜩이나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어쩌자는 것인지 정말 걱정스럽다.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많은 이들이 중국을 비난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막상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지닌 나라인지 잘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간단히 경제 얘기만 해보자.
오늘날 중국은 한국한테 최대 무역파트너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작년에 19.6%에 달해 대미 무역의존도 9.7%의 갑절을 넘어섰으며 수출의존도는 23.8%에 이르렀다. 1991년에는 중국 의존도가 2.9%였던 반면에 미국 의존도는 24.4%였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수출시장이 되었으며, 1990년대부터 최대의 흑자시장으로서 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반면, 중국에 한국은 5번째 수출시장에 불과하다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 불균형으로 인해 한국은 중국의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에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이 구조적 취약점을 잘 보완하여 호혜적인 한-중 관계를 만들어 가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대중정책이 필요하다.
한편 북-중 관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 두드러진다. 중국의 국민소득은 3700달러 정도로 북한보다 10배 높다. 국민총생산은 지난 10년 동안 5배 증가하여 4조9000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북한보다 600배 정도 큰 규모다. 이러한 중국의 성장과 북-중 경제력 격차의 심화는 우리의 북한문제 인식에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북한 지원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중국은 10년 전보다 경제적으로 북한을 돕는 일이 10배나 쉬워졌다. 또한 북-중 임금 격차의 심화로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개성공단을 개발했듯이 중국 기업들도 저렴한 노동시장을 활용하기 위한 북한 진출에 매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처럼 북-중 간에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의존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서방이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하더라도 중국의 협조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게 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은 남한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지렛대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즉, 남한이 대북 지원을 중단하거나 개성공단을 통제한다고 해도,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남한에서 얻지 못한 것들을 구할 수 있다. 하다못해 남한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면 중국 관광객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손실을 메울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지금 한-중 관계와 대북정책 양면에서 모두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된 국제역학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초하여 국익 증진의 대중외교를 구사하는 일이다. 아마 그 길은 지금과 같은 동맹일변도의 정책이 아니라 한-미 동맹을 잘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 균형외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201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