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모음]연평도 사태와 남북관계-전쟁결심 아닌 진지한 평화고민-김근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4.01
조회수 : 5,776
본문
연평도 사태와 남북관계-전쟁 결심 아닌 진지한 평화고민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근식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연평도 사태에 무력 증강이라는 군사적 차원으로 대응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국가의 ‘안보’는 도발을 막고 억지하는 군사적 차원과 동시에 평화로운 관계설정을 통해 근원에서부터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는 관계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에게도 군복무를 의무화하고 지구상 가장 강도 높은 예비군 제도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의 도발을 억지하고 응징하는 군사적 모범은 될지언정 평화로운 관계를 통해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절름발이 안보상태의 전형일 뿐이다. 소극적 평화를 넘어 적극적 평화, 불안정한 평화를 넘어 안정적인 평화로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의 평화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쟁불사론과 흡수통일론, 위기의 한반도
연평도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강경 대 강경의 전쟁불사론과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론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력엔 무력으로 맞대응하면서 단호한 응징으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군사주의가 팽배했다. 남측은 사격훈련 재개 강행을, 북측은 추가타격 위협을 교환했고, 한판 붙자는 식의 언론 보도와 여론 몰이가 전쟁 불안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가 소중하고 우선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사태 이후 한반도는 평화와 정반대의 길로 치달은 것이다. 이제 남북한에서 대화와 협상, 화해와 협력, 교류와 접촉, 지원과 도움은 과거의 단어로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연평도 사태 이후 즉자적인 분노와 흥분만으로 안보담론의 프레임에 갇혀 군사조치만을 강조하는 것은 절반의 대응에 불과하다. 군사적 차원의 무력 확대와 화력 증강 조치는 북의 도발 이후를 상정한 것이다. 북이 또 다시 연평도나 백령도를 기습 포격했을 때 더 빨리 더 강력하게 북을 제압하고 막대한 응징을 하려는 목적이다. 북의 도발을 상정한 사후적 억지로서 군사적 차원의 조치는 여하튼 쌍방의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군사적 차원의 해법은 북의 도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북 응징을 최대화하는 것이지 도발 자체를 막는 근본 처방은 되지 못한다. 상대방이 이를 감수하고라도 도발을 결심한다면 결코 사전에 막을 수 없고 단지 사후에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항구적이고 포괄적인 목표 추구해야
일반적으로 국제정치에서는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억지와 상호 확증파괴의 우려 때문에 전쟁이 억지되고 군사적 충돌이 방지되는 것을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라고 개념화한다. 이른바 ‘불안정한 평화’(unstable peace)다. 냉전 시기 군사적 대치와 간헐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소극적 평화이자 불안정한 평화였다. 이에 비해 분쟁의 근원을 해소하고 갈등을 종결시켜 상호 평화적 관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전쟁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이루는 것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이며 ‘안정적 평화’(stable peace)다. 남과 북이 지금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종료하고 상호 공존의 평화체제를 제도화하는 것이 곧 적극적 평화인 셈이다.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화해협력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소극적 평화를 넘어 조금씩 적극적 평화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북의 빈번한 도발과 우리의 군사적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적극적 평화는 사라지고 냉전 시기의 소극적 평화로 회귀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분쟁 억지라는 소극적 평화마저도 위협받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연평도 사태 이후 무력 증강이라는 군사적 차원의 대응은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국가의 ‘안보’는 도발을 막고 억지하는 군사적 차원과 동시에 평화로운 관계설정을 통해 근원에서부터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는 관계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에게도 군복무를 의무화하고 지구상 가장 강도 높은 예비군 제도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의 도발을 억지하고 응징하는 군사적 모범은 될지언정 평화로운 관계를 통해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절름발이 안보상태의 전형일 뿐이다. 소극적 평화를 넘어 적극적 평화, 불안정한 평화를 넘어 안정적인 평화로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의 평화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군사적 차원의 대응조치 외에도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항구적이고 포괄적이고 안정적인 접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합동 대잠훈련과 함께 긴장과 대치의 서해바다를 평화와 협력의 바다로 전환하는 지난한 노력과 지혜가 필요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자주포를 늘리고 군대를 증강하고 전투기를 띄우는 것이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맞대응하는 절반의 평화라면 남북의 적대와 분노와 갈등관계를 상호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만들어 북으로 하여금 도발을 아예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충분조건으로서의 나머지 절반의 평화이다.
현 정부 무기력한 강경정책과 북한 붕괴의 환상 버려야
2010년 남북관계는 연평도 포격과 전쟁위기 고조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영토 포격과 민간인 사망이라는 사상 초유의 북한 도발로 인해 남북관계는 단순한 중단을 넘어 전쟁 위기까지 가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 포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세인식은 이후 대북 강경 대응과 함께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한 기대로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북의 강경도발과 핵 보유를 막을 길 없다는 무대책의 자포자기 심정에 따르면 그 정세인식의 연장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수수방관정책이거나 김정일 정권 제거와 북한체제 붕괴를 적극 추진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전쟁 직전의 상시적 위기상황에서 2011년 통일부 업무보고가 ‘통일 준비’로 집약되고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 접근해서 북의 근본적 변화를 견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음은 이제 북한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이라는 ‘한 방’ 해결책으로 대북정책에 접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만하다. 2010년을 넘기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 이상의 남북대화가 무의미한 흡수통일 대망론으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새해 들어 북한이 신년사설과 정부·정당 연합성명을 통해 조건 없는 대화와 당국 간 회담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가 시종일관 북의 위장 평화공세라며 일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라는 전제조건을 걸어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것 역시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붕괴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급변사태 임박론과 북한붕괴 통일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지금 김정일 타도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말로 떠드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지금껏 대북 강경과 기다림의 전략이면 북이 괴로워 할 것이고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인식에 갇혀 3년을 허비하면서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 고조만을 결과했다. 또 정권교체론에 갇혀 대북 압박과 봉쇄를 하더라도 미국과 대등한 G2로 부상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정권 교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바람대로 북한 내부의 변화가 정권교체를 가져오는 것도 희망적 기대일 뿐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결국은 정권교체론은 또 다시 말의 성찬에 머물고 그 말에 의해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 고조만을 심화시킬 뿐 처음부터 불가능한 무대책의 빈 말일 뿐이다.
적대적·군사적 대응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항상 말만 앞세워 왔다. 말로는 단호한 응징을 외쳤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고 말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자신했지만 지금은 변화조차 기대할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햇볕정책을 단죄하고 강경정책을 고수하면 북이 굴복하고 변화하여 잘못을 고칠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3년이 다되는 지금 북은 아파하거나 굴복하지도 변화하지도 잘못을 고치지도 않고 오히려 남쪽에 대한 분노를 켜켜이 쌓아 군사적 도발을 결심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관리되고 개선되기는커녕 우라늄 농축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들고 나와 압박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적대적 남북관계와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온존한 채 군사적 차원의 조치만으로는 결코 연평도 평화는 달성되지 않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바대로 개성과 해주 공단에서 남북의 근로자가 함께 일하고 북한 배가 우리 영해를 지나가고 남북의 어선이 공동어로구역에서 같이 꽃게잡이를 하고 남북 해군이 호위를 하고 인천 앞바다에서 남북이 함께 한강모래를 채취해 나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연평도의 평화는 이뤄지게 된다. 그 모습과 풍경에서 북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지금은 전쟁을 결심하자고 우길 게 아니라 진지한 평화를 고민할 때다.
용어해설 :
상호 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 Mutual Assured Destruction) :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에 또는 도달한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 전략.
김근식 |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현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장, 통일부 국방부 청와대 자문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