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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모음] 이명박 대통령의 나라 -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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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4.15

조회수 : 5,179

본문

이명박 대통령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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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이명박 정부 아래서 산 지도 3년이 넘었다. 이 대통령의 통치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그를 가리켜 모든 일을 친히 살펴보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이며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믿음을 가진 ‘과신(過信)형’의 지도자라고 말한다. 그의 만기친람 스타일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대부분의 중요 현안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현장 지시를 즐겨 한다. 자신에 대한 과신은 그의 전매특허처럼 된 ‘왕년에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다. 회의 도중 나오는 많은 즉흥적인 지시들이나, 당선자 시절 자신이 특정 영화를 본 걸 계기로 그 영화 관객이 100만명쯤 늘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서도 그 과신이 묻어난다.



이러한 통치 스타일은 정부가 생색낼 만한 일들은 ‘자신의 지시나 결단’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대통령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권에 순치된 많은 언론의 낯간지러운 ‘명비어천가’로 울려 퍼진다. 이 어용 매체들은 천안함 사건에서 보여준 무능한 대처, 초유의 구제역 재앙 등 숱하게 실패한 정책과 국정 난맥상에서 대통령이 한 역할은 그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지도력을 억지로 부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가끔은 이 나라가 이명박 대통령의 나라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러나 전지전능이나 만기친람의 리더십은 장관이나 참모들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게 함으로써 각 부처가 제대로 된 독자적인 상황대처 능력이나 부처 간 조정 능력을 갖기 어렵게 한다. 대통령의 시야에서 벗어난 정책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대통령의 ‘전능함’에 주눅 든 관료들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이루어지는 대통령의 즉흥적인 지시에 대해서조차 이의를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정책화한다.



대통령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스스로를 과신하기 때문에 ‘국익’이라는 말 한마디로 대선 공약들도 쉽게 뒤집는 것 같다. 대통령과 다른 정치인들이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으나 국민의 대표임은 마찬가지인데도, 자신은 국익만을 생각하는 반면에 타인들은 정략과 사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이분법이 놀랍다. 지도자에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서 쌓는 신뢰보다 더 큰 국익이 있을까? 대선 공약은 수정될 수 있지만, 그 경우 솔직한 사과와 진지한 국민 설득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도 자주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명비어천가’를 접하면 엉뚱하게 만기친람과 전지전능한 리더십 선전의 원조 격인 북한 체제가 떠오른다. 현지지도라는 형식을 통해 중요 국사를 결정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예외 없이 지도자의 현명한 영도 덕분이라고 끌어다 붙이는 북한 체제의 시대착오성과 전근대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95년에 나는 <조선로동당연구>라는 책을 내면서 북한에서 개인숭배가 만연하는 배경을 지도자의 권력의지와 정치·사회·문화적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개인적인 배타적 권력의지와 제왕의식을 빼놓고는 개인숭배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김일성은 소련 공산당 제9차 대회에서 자신의 50회 생일을 축하하는 대표들의 연설을 듣다못해 퇴장해버린 레닌이나 중국 공산당에서 개인숭배 금지를 규칙으로 정한 덩샤오핑(등소평)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극단적인 찬양과 경모의 소리를 즐겼으며 또 그것을 조장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개인숭배가 발붙일 곳은 없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권력의지로 국익을 그려내고 그것을 국민에게 내리먹이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 자유롭고 광범한 토론 과정이 만들어 낸 공론을 통해서 국익이 형성되고 공유되며, 나아가 국가전략이 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두 국익이 불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화는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2011/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