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모음] 6.15 11돌 시간이 없다. -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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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6.14
조회수 : 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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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11돌, 시간이 없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이수훈
지난 3년 반의 남북관계를 갖고
시시비비를 논할 시간이 없다
지난 시기 놓쳐버린 기회들도 잊자
남 탓하고 질질 끄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다가 지난해 ‘5·24 조처’로 인해 전면차단 상태에 빠졌다. 1년이 지났는데도 정부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아직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덫이 되어 남북관계에 일보의 진전이 없다.
실용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정부가 이념 노선을 택하고 강경대결 정책을 구사한 나머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뒤따랐다. 한반도에 평화가 사라지고 우리는 갑자기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남북이 윈윈하고 있던 교류협력 사업들이 중단되었다. 특히 경협 분야에 치명타를 가해 북방경제를 잃었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사업 주체뿐만 아니라 강원도 지역경제에 적잖은 피해가 일어났다. 개성공단은 명맥을 이어갈 뿐 이전의 활기를 상실했다.
이렇게 발생한 공백을 북-중 교류협력이 메우고 있다. 북-중 간에 빈번한 정상회담이 일어난 끝에 신의주와 나진 방향의 경협 사업들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비핵’을 내건 정부로서 북핵 문제의 현주소는 어떤가. 기다린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동안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한층 진전시켰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성공리에 마쳤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였다.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하는 사이에 국제적 제재에 외교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제재가 효과를 거둔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중국이 유엔 결의에 따른 제재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제재는커녕 경제적 유착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핵화’를 다루는 유일한 수단인 6자회담은 한국의 부정적 태도와 미국의 미온적인 태세로 인해 열릴 기미가 없다. 중국이 쫓아다니면서 재개의 모멘텀을 만들면 우리가 전제조건을 내걸어 무산시킨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을 그렇게 강조하고 북한한테 복귀를 요구하더니 이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걸어 재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여러차례 6자회담 복귀와 ‘9·19 공동성명’ 이행 의사를 밝혔음에도 우리는 6자회담을 무용지물인 양 치부하고 있다. 베를린 선언이나 남북 비핵화 회담 따위의 비현실적인 해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북핵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최근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베이징에서의 비밀접촉을 두고 남북 간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쪽은 접촉의 목적이 정상회담이 아닌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 하고, 이에 북쪽은 정상회담의 개최를 남쪽이 구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북쪽은 녹취록을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고, 현재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상당히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해당된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는 일은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추진할 일이지, 비밀접촉을 통해서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아주 불필요한 진실 공방을 양쪽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꼬여버렸는가. 2008년 초 이명박 정부가 전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를 부정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남과 북의 지도자가 서명한 합의를 부정하고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데서 사달이 일어났다.
이제 지난 3년 반의 남북관계를 갖고 시시비비를 논할 시간이 없다. 지난 시기 놓쳐버린 기회들도 잊자.
이명박 정부에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는다. 남 탓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질질 끄는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긴장 완화, 평화 조성, 비핵화, 경협, 인도적 교류 등 절박한 사안들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결단해야 한다. 전환의 출발은 대결정책을 접고 상호존중의 6·15 정신으로 돌아가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