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모음] 북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평화’다 - 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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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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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평화’다
2011년 08월 01일 (월) 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지난 4월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은 남북 수석대표 회담→북미접촉→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접근법’에 합의했다. 올해 초 우리 정부가 6자회담 재개 과정으로 제시한 3단계 접근법을 중국과 북한이 수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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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개월이 흐른 지난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가 2년 7개월만에 회동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28~29일 미국 뉴욕에서 1년 7개월여 만에 북미 고위급 대화가 열렸다. 이번 남북, 북미 회동은 표면적으로 ‘탐색전’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 가지 측면이 주목된다.
‘3단계 접근법’의 1,2단계 동시 진행
첫째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접근법’의 1,2단계가 동시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발리회동’ 후 “이 회동을 북한이 6자회담에 참석하도록 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생각했으며 두 번째 단계로는 북측이 이번 주 뉴욕에서 미국 대표와 회담을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본 회담 성격의 후속 남북.북미대화가 열려야 최종 결정되겠지만 6자회담 재개에 물꼬를 튼 것만은 확실하다.
둘째는 길게는 지난 해 7월부터, 짧게는 올해 4월 말부터 북미 간에 이뤄진 물밑접촉이 공식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뉴욕채널을 통해 6자회담 재개을 위해 포괄적인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지난 4월 북한과 중국이 ‘3단계 접근법’을 수용한 이후에는 뉴욕채널과는 별도의 창구를 통해 좀더 깊숙한 논의를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셋째는 남과 북이 남북문제와 비핵화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남북대화 비핵화대화를 분리하자는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한 점이 눈에 띈다.
미국의 외교당국자들은 올해 1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이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부에 반대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명박 정부도 우여곡절 끝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6자회담의 직접적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또한 정부는 UEP(우라늄농축 프로그램) 문제에 대해 ‘선 안보리 대응, 후 6자회담 재개’ 기조를 폐기하고 UEP 문제를 6자회담 틀에서 논의하자는 중국 측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건설적이고 실무적이었다고 평가
이틀에 걸쳐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간에 이뤄진 회담의 상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측은 29일 회담 종료 이후 “건설적이고 실무적(businesslike)이었다”는 일치된 평가를 내놨다.
회담에서 북미는 비핵화를 위한 사전조치, 북미관계 정상화, 6자회담 재개방안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 대표단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포함한 모든 핵개발 활동의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 확약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즈워스 대표는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건설적 파트너로서 6자회담 재개를 지지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대화 재개, 미국과의 관계개선, 더 큰 틀의 지역 안정을 향한 길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반면 북한은 평화협정 논의와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제재 해제 등을 다시 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이 “비핵화를 포함한 조선(한)반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포괄적 논의를 마친 북미는 3단계인 6자회담 개최를 위해 후속 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우선 한국, 일본과 수주일 안에 회동을 갖고 이번 북미 회담의 결과를 평가하고 다음 일정을 잡을 것이다. 핵심쟁점은 역시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요구인 평화협정 체결을 어떤 과정을 통해 논의하고, 어느 시점에 수용하느냐가 될 것이다.
지난 2009년 12월 8~10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했을 때 미국은 북한의 요구인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수용하고, 북한은 미국의 요구인 6자회담 재개 및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수용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동시 병행으로 진행한다는 점에 잠정 합의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2010년 1월 11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당사국간의 한반도 평화협정 회담을 제안했다. 논의틀과 관련해 9.19공동성명에서는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고, 4자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최근 북미는 물밑접촉을 통해 북한의 6자회담의 복귀 시점과 방식,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의 선후문제 등의 쟁점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북한은 후속회담에서 좀더 전향적인 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미 2009년 11월 하순 방북한 미국의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일행에게 미국이 항구적인 평화 조약 체결을 확약하면 핵폐기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북한은 지난해 12월 방북한 미국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원자력기구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고, 사용 전 핵연료봉 1만 2000개에 대한 매각 의사를 보였다. 지난 5월 방북한 로버트 킹 대북 인권특사와는 최초로 인권대화를 수용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조치로 요구하는 사안들의 상당부분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2~3개월 후 6자회담 재개될 듯
따라서 북미 후속회담을 통해 북미는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 2~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6자회담 재개 전에 대북식량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 틀이 갖춰진 데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 동안 6자회담 조속 재개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고, 걸림돌이던 일본 역시 최근 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의 추가회담도 가능할 것 같다. 이때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제안된 미사용 핵연료봉의 매각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6자회담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북핵문제는 합의가 아니라 상호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미국과 한국이 구상하고 있는 ‘포괄적 패키지론’이 가지고 있는 비대칭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즉 북핵폐기는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비교적 단기에 이룰 수 있지만, 반대로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은 시간을 두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언제든지 가역적(reversible)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00년대에 들어와 북미합의.6자회담 합의가 한국.일본.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뒤집어지거나 재검토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한.미.일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시설 철거,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 비핵화 검증 등 3개 분야를 수년간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한.미.일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합의사항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신뢰를 북측에 어떻게 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불가역적인 북핵폐기와 불가역적인 북미관계정상화 프로세스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이행되고, 보장된다면 6자회담은 순항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의 평화협정 체결 논의 수용여부가 핵심이다.
‘발리회동’ 후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회담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북측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지원과 다른 유인책을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은 대신에 핵포기를 전제로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담은 9.19공 동성명 이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라고 발언한 것도 이를 보여준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평화’인 것이다.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 때 미국 대표단의 한 보좌관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가안보위원회 수석연구원이었던 정치학자 찰스 쿱찬의 신간 『적이 친구가 되는 법(How Enemies Become Friends)』을 회담장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쿱찬은 미국이 적대국과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을 지지했다. 그의 주장을 오마바 행정부가 수용해 적대국 북한과 관계를 맺고 한반도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도 역시 ‘경제원조’가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이 가장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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