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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모음]짓밟힌 남북화해의 상징 -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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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1.04.01

조회수 : 5,730

본문

짓밟힌 남북화해의 상징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산에 오르면 “삐라”라고 불렀던, 북한에서 보낸 심리전 전단이 널려 있었다. 남한의 현실과 박정희 독재정치를 극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북한 체제를 미화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우리가 전단을 줍는 이유는 그것을 모아서 파출소에 갖다주면 연필이나 공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렸지만 북한이 남한에 전단을 날려 보내는 것이 우리 사회를 혼란시키고 공산화시키기 위한 비열한 술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용품이 생기지 않아도 좋으니 남북이 빨리 화해해서 중상과 비방으로 가득한 북한 전단이 아름다운 강산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졌다. 그 소망은 스스로 깨친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며 가르쳐준 규범이었다.



남북은 1972년 남북공동성명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첫 조처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다. 이 합의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구체화되었고 2004년 6월부터 철저히 실천되었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애를 먹기는 했으나 적어도 남북 당국 사이에는 이 합의가 잘 지켜졌다.



그러나 이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복조처로 군당국이 나서서 대북전단에 생필품까지 끼워서 날려 보낸다고 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임진각에서 북한 도발을 유도나 하듯 공공연히 대북전단을 날리며 파주시민들을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로써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는다는 남북화해의 상징은 깨지고, 대신에 앙갚음식 대결의 악순환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정부와 극우인사들은 냉전적 정책과 언사들을 쏟아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른 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에게 금강산 관광은 만난을 무릅쓰고 꼭 이루어야 할 소망이었다. 남북 군사대결이 치열했던 시절인 1971년 4월, 박정희 대통령조차 제10대 대통령선거 유세 과정에서 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5년 뒤에는 남북 도로를 연결하고, 남과 북이 각각 3억달러와 2억달러씩을 내서 금강산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할 정도로 금강산 관광은 분단 해소의 길을 상징했다. 이 꿈은 1998년 우리의 관광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금강산을 향하면서 실현되었다. 그 뒤 엔엘엘 인근에서 조업하다 북한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납북어부”는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막상 금강산 관광이 실현되자 냉전주의자들은 우리의 금강산 꿈을 한낱 퍼주기의 전형으로 매도해왔다. 결국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금강산을 향한 휴전선의 통문은 닫히고 말았다. 현정은 현대 회장이 김정일을 만나 이 사건을 풀 단초를 마련하고 다섯 가지 사항에 합의했으나, 정부는 제 입맛에 맞는 곶감 빼먹듯 이산가족 상봉만을 수용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러다간 “납북어부”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남북화해의 상징을 짓밟는 이들이 항상 대신 내세우는 것은 안보다. 특히 이들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자신들의 특허품인 양 처신한다. 그래서 1994년 조창호 소위 귀환 이후 2010년까지 탈북 귀환한 국군포로 80명의 현황을 밝힌 통일부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명박 정부 3년간(2008~2010년) 귀환 국군포로는 10명인 데 비해 참여정부 3년간(2003~2005년)은 30명이었다. 일반 탈북자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국군포로 귀환에는 정부의 노력이 숨어 있다. 참여정부는 국군포로 귀환을 위한 특별조직을 가동하고 각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직접 주도하였다. 이명박 정권은 입으로는 안보를 말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조하지만 이 단순한 자료조차도 누가 진정 애국정권인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우리의 삶을 그 척박했던 냉전시대로 돌리려 하는 정략과 무능, 무책임으로 얼룩진 얼치기 정책을 언제까지 감내할 것인가? 깨어 있는 시민의 결연한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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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2011/03/15